세계 코스의 발전사
이제 그렇다면 어떻게 SF 팬덤 유저들에게만 익숙하던 가장 놀이가 갑자기 일본의 만화-애니로 불붙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이후 '코스'라는 개념이 어떻게 생기고, 전 세계로 확산되게 된 것일까요? 참고로 이 단락에 대해서는 일본어 위키백과의 관련 내용들을 바탕으로 내용을 구성한 부분이 있음을 미리 밝혀드립니다.
1970-80년대 : 일본 만화-애니 코스의 태동
1939년 세계 과학소설 컨벤션의 시작을 바탕으로 그 이후부터 일련의 'SF 코스'가 시작되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까 앞에서 설명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애커만과 같이 SF 소설의 캐릭터 내지 일러스트 내 캐릭터를 따라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컨벤션을 바탕으로 그것이 전파되고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도 설명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SF 소설은 곧 일본에도 전파되기 시작합니다. 한국전 이후에 미국 병사들이 1940년대부터 이미 꽃을 피우기 시작한 미국의 SF 소설을 일본 고서점에 판 것을 시초로, 일본에서도 SF라는 개념을 알기 시작했고, 1954년부터는 최초의 SF 잡지인 성운(星雲, 세이운)을 필두로 SF소설 번역이 한층 강화됩니다. 1957년부터는 일본 내에서의 SF 창작 움직임이 시작되어 동인지 발매를 하기도 하고, 1959년에는 미국과 직접 제휴한 'SF 매거진'도 생기는 등 점차 일본의 SF는 미국의 SF를 수입해 오기 시작하고, 이를 모방한 것이 1962년에 처음으로 열린 [ 일본SF대회 ]입니다. 이 또한 미국의 세계 과학소설 컨벤션을 그대로 복제한 것으로, 1960년대 말부터는 미국에서 시작된 SF 코스의 복제 또한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1970년대부터 특이한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 일련의 연결이 복잡하기 때문에 시간순으로 설명하겠습니다.
1) 1970년대 초, 일본의 전공투 등의 일련의 공산주의 투쟁에 싫증을 느낀 비권적인 반동으로부터 일본의 각 대학에 만화연구회들이 생기고, 이러한 자발적인 동호 활동을 바탕으로 만화 평론지나 만화 동인지들이 새로이 확산되게 됩니다. 이러한 붐을 노린 이벤트 기획사들은 이 만화연구회들에 '캐리커쳐 그려주기'나 '만화 패널 전시' 등을 할 것을 제안하고, 당연히 돈이 되니 멤버들이 참여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만화 캐릭터의 옷을 갖춰 입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Takahashi01=高橋信之, 2006). 이 것이 타 연구자들은 그렇게 평가하지는 않지만, 일본 만화-애니계 코스의 시초였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물론 이 때는 코스라는 단어는 사용되지 않고, 외부에서 부르는 호칭 또한 없었습니다. 이후 1970년대의 코스 행사는 만화동인지들에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2) 1975년, 코미케가 시작됩니다. 이 과정에서 만화연구회들이 동인지를 팔면서 매대에서 코스를 하는 분위기가 그대로 코미케로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코미케의 창시자 요네자와 요시히로의 회고에 따르면, 코미케가 반복될 수록, (매대와 상관없이일지의 부분은 해석하기는 어려우나) 애니 코스를 하는 사람이 점점 생겨났다고 합니다.(일본어 위키백과) 이러한 분위기는 다른 곳에서도 이어져 1980년대 초반에도 매대에서 코스를 하고 동인지를 파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Takahashi01=高橋信之, 2006)
2) 1977년에, 이바라키현 미토 시에 있는 소재 불명의 쇼핑센터 개업을 기념한 행사로 '만화 대행진 퍼레이드'가 있었고, 여기에 6개교의 만화연구회들이 참여하였다고 합니다. (Takahashi01=高橋信之, 2006)
3) 동년, 코미케에 1972년 작 <바다의 트리톤 (한국명 - 바다(의) 소년 트리톤, 바다의 왕자 트리톤)>을 코스한 코스어가 등장했다고 합니다만(篠宮亜紀, 1998?), 이 것은 아래의 사항을 착오한 것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해당 문헌을 확인할 수 없는 관계로 추가적인 판단은 보류합니다.
4) 1978년, 카나가와현 하코네의 아시노코호텔에서 개최된 18회 일본SF대회 (ASHINOCON)에서, SF 서클이었던 로레리어스(ローレリアス)가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의 '화성의 비밀병기A fighting Man of Mars'를 팀으로 코스했다고 합니다. 이 것을 본 사람들이 <바다의 트리톤>을 코스한 것으로 착각했다고 합니다.(일본어 위키백과) 다만 이러한 상황은 타카하시의 회고에서는 등장한 적이 없는 것을 바탕으로 보면, 만화연구회인들에게 알려졌을 가능성은 없다고 봅니다.
5) 이 후로부터, 일본의 다양한 미디어가 코스에 대한 단발성 보도를 이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애니메이션 잡지들 또한 코스에 대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실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코스를 대중화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애니메이션계 잡지인 팬로드fanroad는 창간호에서 당시 화려한 의상을 입고 라디오를 틀어 춤을 추고 있는 '죽순파=타케노코파竹の子派'를 패러디하여 '토미노코파トミノコ派'라는 것이 생겼다라는 보도를 내놓았는데, 여기에서의 토미노라는 것은 건담의 감독인 토미노 요시유키富野由悠季의 앞 글자를 딴 것으로, 건담의 모빌 슈트나 건담옷을 입은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는 사진이 여기에 들어갔다라고 합니다.(일본어 위키백과) 물론 프로모션 용도의 기사입니다만, 당시 시대의 유행이 되고 있던 죽순파의 형태를 차용하여 우리도 대중문화적인 소통을 하고 있다는 식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던 일련의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6) 1983년 5월 경, 아키타쇼텐秋田書店이라는 출판사에서 펴내는 애니메이션 잡지 <마이 아니메マイ アニメ> 의 작품 제작을 맡고 있던 와세다 만화연구회 '연구생'의 소속인 세 명(타카하시 노부유키高橋信之, 마치야마 토모히로町山智浩, 요시오카 히로시吉岡浩)이 최근 코미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코스 형태를 소개하는 기사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코미케 등에서 코스어들을 촬영해 내용을 붙이는 과정에서 지금까지는 '가장'이라고 했던 것을 조금 서양스럽게 옷을 가지고 노는 것이니 '코스튬 플레이Costume play', 즉 옷을 가지고 연기를 하는 것이라고 새롭게 호칭하는 것이 어떨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해당 기사의 제목을 <코스튬·플레이 대작전コスチューム·プレー 大作戦>로, 부제를 Hero Costume Operation로 한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그런데 기사를 작성하던 사람 중의 한 명이 코스튬 플레이는 원래 의미가 시대극이니만큼 잘못된 영어 사용이 아닌가라는 지적을 하였고, 이에 따라 코스튬 플레이를 그대로 쓰지 말고 코스프레로 줄여서 쓰자는 합의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해당 기사는 6월호의 pp. 106-110. 에 게제되었는데, 제목은 코스튬 플레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만, 108쪽부터는 코스프레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110쪽에서는 '코스프레 메이킹 가이드コスプレ·メーキング·ガイド' '코스프레 사진 대모집!コスプレPHOTO大募集!'등의 단어가 나오는 등 코스라는 단어가 이 기사를 통해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반응이 좋아 이 기사는 원래 단발성으로 가려고 했던 것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결과가 되었습니다만, 아직까지는 코스라는 단어가 어색한 관계로 이 매체를 통해서만 사용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秋田書店(1983), Takahashi01=高橋信之, 2006에서 재인용). 이에 비해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서는 이보다 앞선 1982년에 이 단어의 사용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만(OED.com), 그 근거를 확인할 수 없으므로 우선 이 것을 최초의 근거로 합니다.
7) 1985년에는 일본 TBS가 코미케에 가서 코스를 취재하여 방영하는 등의 일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 해에 1981년부터 만화와 애니로 OSMU가 진행중이던 <캡틴 츠바사>가 동인계로 뜨면서 캡틴 츠바사의 코스옷이 쉽게 개조가 가능해 {이 것을 기성복 개조라고 합니다} 많은 동인들이 코스계로 들어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일본어 위키백과)
8) 이후 1986년경에는 코스프레라는 단어가 코미케 등의 일상에서 널리 보급되었다고 합니다(Takahashi01=高橋信之, 2006). 또한 팀코라는 개념이 정착하고 사진사 그룹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어 위키백과)
다소 복잡합니다만, 이 정도의 분량이 아니면 일본의 만화-애니 코스의 태동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정리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다시 한 번 짧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 1975년 코미케 시작과 함께 만화연구원들의 주도로 동인 행사들에서 판매자들에 의한 코스가 이어짐
> 1978년 기존의 SF 팬들에 의한 '가장'이 코스로 오인되는 상황이 발생
> 1983년 5월, 아키타서점의 <마이 아니메>를 통해 최초로 코스프레라는 단어 생성
> 1986년에 코스프레라는 단어 정착, 팀코와 사진사 개념 등장
이 정도의 다섯가지 포인트라면 애니-만화계 코스의 시초에 대해서는 크게 설명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1990년대 : 해외로의 전파
1993년에는 한국의 만화 동인들을 중심으로 코스가 한국에 도입되었습니다. 껑깐(2012)에 의하면 1998년도에는 타이에도 도입되었다고 합니다. 각국의 코스 도입시기에 대해서는 보다 더 많은 연구와 조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2000년대 ~ : WCS, 그리고 ICD?
2003년, 나고야에 소재한 아이치TV에 의해 월드 코스프레 서밋(World Cosplay Summit)이 시작합니다. 이들은 한국의 무대행사를 바탕으로 국가간 경쟁을 붙이는 챔피언십을 2005년에 도입하게 됩니다. 또한 몇년 후부터는 일본 외무성, 나고야시 등의 국가적인 지원도 받는 큰 행사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체샤님의 환골탈태와 ㈜삼성에버랜드를 중심으로 하는 Wonder Cosplay Festival 이 조직되어 활동해 왔으나 최근 코스프레닷컴-환골탈태 그룹 자체의 잠적으로 2013년부터는 대한민국의 참가 자체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2010년, 이러한 일본국의 노력과는 상관 없이 세계코스의날(International Cosplay Day)가 미국의 코스어에 의해 자발적으로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8월 25일 하루를 집에서 코스옷을 입고 바깥에서 코스어들끼리 모이면서 즐기자라는 목적으로 시작한 행사였습니다만, 이후 참가를 독려하기 위해 현재는 8월 마지막주 주말로 변경되었습니다. 2012년에는 8개국 33개 장소에서 행사가 개최되었고, 앞으로 지속적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입니다.
향후 세계 코스판이 WCS를 중심으로 한 일련의 상업적인 판으로 재편될 것인지, 아니면 팬들의 자발성을 기반으로 하는 ICD 형태로 다시 돌아갈 것인지에 대한 부분은 코스인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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