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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감리교회협의회와 의화교리에 관한 공동선언 세계감리교협의회와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문
감리교 선언문감리교 성명서
1. 루터교 세계연맹과 로마 가톨릭교회의 공식적인 승인을 거쳐 1999년 10월 31일 동반교회로서 “루터교와 로마 가톨릭교회에 의한 공식적 공동성명서”에 서명함으로써 “의화(Justification) 교리에 관한 공동선언”을 확정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의화교리의 기본 진리에 대한 공동 이해를 명확히 하면서 로마 가톨릭과 루터교 사이의 실질적인 합의는 16세기 서방 교회 안에서 분열의 주된 이유인 신학적 논쟁에 관련해서 볼 때 많은 부분 합의에 이르렀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1. 루터교 세계 연맹과 로마 가톨릭 교회는 공식 승인을 거쳐 1999년 10월 31일 “루터교 세계 연맹과 가톨릭 교회의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성명서”에 서명함으로써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문”을 확정하였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통하여 하느님의 은총으로 얻어지는 의화 교리의 기본 진리에 대한 공동의 이해를 분명하게 설명한 이 실질적인 합의는, 로마 가톨릭 교회와 루터교가 16세기 서구 교회 분열의 주요 원인이었던 신학적 논쟁과 관련하여 중요한 합의에 이르렀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2. 세계감리교협의회 안에 소속된 우리 교회들은 이러한 동의를 큰 기쁨으로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의화교리의 공동선언(JDDJ 15~17항)에서 소개된 일반적인 의화의 이해가 감리교의 교리와 부합한다고 선언합니다. 우리는 특히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대한 삼위일체적 접근으로 다음 항에 설명하는 것에 사의를 표명합니다.2. 세계감리교협의회에 소속된 우리 교회들은 이 동의를 매우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문”에서 설명하는 의화에 대한 공동 이해(15-17항)가 감리교의 교리에도 부합한다고 선언합니다. 우리는 특히 하느님의 구원 활동을 삼위일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다음 항들을 만족스럽게 생각합니다.
>15. 신앙 안에서 우리는 모두, 의화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의 역사(役事)라고 확신합니다. 성부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분의 아들을 세상을 보내셨습니다. 의화의 기초와 전제는 성육신, 죽음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그러므로 의화는 성부의 뜻에 일치하는 성령을 통해 공유하는 그리스도 그 자신이 우리의 의(義)가 되심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다함께 고백합니다. 우리의 어느 공로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구원 사역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은혜로만 우리는 하나님께 용납되고, 성령님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분은 선한 사역을 예비하게 하시고 부르시어 우리의 맘을 새롭게 하시는 분입니다.>15. 신앙 안에서 우리는 모두, 의화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역사(役事)라고 확신합니다. 성부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고자 당신 아드님을 세상에 파견하셨습니다. 의화의 토대와 전제는 그리스도의 강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입니다. 그래서 의화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의 의(義)가 되심을 뜻하며,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여 이 의(義)에 참여하게 됩니다. 우리는 다함께 고백합니다. 우리의 어떤 공로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에 대한 믿음 안에서, 오로지 은총에 의해 우리는 하느님께 수락되어, 우리를 선행으로 준비시키고 부르시면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을 받게 됩니다.
>16.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에 의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신앙 안에서 이러한 구원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의로워 질 수 있습니다. 신앙 그 자체는 성령님을 통한 하나님을 선물입니다. 그분은 성도의 공동체에서 말씀과 성례전을 통해서 일하시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완성으로 이끄시어 삶을 갱신하도록 성도들을 인도해 주십니다.>16. 모든 사람은 하느님에 의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서 이 구원을 받을 때에 우리는 오로지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 의화됩니다. 신앙은 그 자체로서 성령을 통하여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이며, 이 성령께서는 신자들의 공동체 안에서 말씀과 성사를 통하여 일하시면서, 동시에 하느님께서 영원한 생명 안에서 완성으로 이끄실 삶의 쇄신으로 신자들을 인도하십니다.
>17. 우리는 또한 의화의 메시지가 특별한 방법을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관한 신약의 증언들의 핵심을 향해 이끌어 준다는 확신을 나누게 됩니다. 이는 우리가 죄인된 자로서 우리의 새로워진 삶이 하나님이 선물로 나누어 주시는 용서와 갱신하는 자비로써만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 주며, 이는 우리가 믿음 안에서 받을 뿐, 결코 어떤 방식으로도 공로가 될 수 없습니다.>17. 우리는 또한 의화 메시지가 특별한 방식으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구원 활동에 대한 신약 성경 증언의 핵심으로 이끌어 간다는 확신을 공유합니다. 곧, 죄인들로서 우리가 얻게 되는 새 생명은 오로지 하느님께서 선물로 부여하시고 우리는 믿음으로 받게 될 뿐, 결코 어떤 방식으로도 공로로 취득할 수 없는, 용서하고 새롭게 하는 자비의 덕임을 말해 줍니다.
3. 우리는 루터교와 로마 가톨릭이 종교개혁 시기 이후로 그들 사이에서 분쟁이 되어온 의화의 교리 안에 있는 중대한 문제들 중에 일부를 함께 이야기 한 것에 대해 동의합니다. (참고: JDDJ 19, 22, 25, 28, 31, 34, 37항) 게다가 루터교와 로마 가톨릭이 의화 문제에 있어서 각자의 입장에 대한 선언문 20-21, 23-24, 26-27, 29-30, 32-33, 35-36, 38-39항의 설명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의화 교리에 대한 이러한 다양한 강조가 두 교회와 그리고 감리교를 구분하는데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3. 우리는 종교 개혁 이래로 루터교와 로마 가톨릭 교회 사이에 논쟁의 대상이 되어 온 의화 교리의 몇몇 중요한 쟁점들에 관하여 공동으로 선언한 내용에 동의합니다(공동 선언문, 19.22.25.28.31.34.37항 참조). 나아가 우리는 이 쟁점들에 관한 루터교와 가톨릭 교회 각자의 입장에 대한 설명(공동 선언문, 20-21.23-24.26-27.32-33.35-36.38-39항)을 수용하며, 이러한 강조점의 차이가 두 교회 어느 쪽과도 감리교를 갈라지게 하는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4. 감리교 운동은 루터와 다른 종교개혁자들 그리고 웨슬리 형제들이 의화를 이해했던 것처럼 항상 의화의 교리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을 크게 의존해 왔음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동서방의 초대교회의 보편적 전통에 속한 의화교리의 요소를 항상 포용해 왔습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의 의화 교리가 독특한 특징을 갖게 되었습니다. 루터교와 로마 가톨릭 사이에서 이루어진 “의화 교리의 기본적인 진리에 대한 동의”(JDDJ 40항)를 해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언어, 신학적 정교함과 강조의 남은 차이점”에 관련하여 비교해 볼 때, 감리교의 가르침은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4. 감리교 운동은 스스로 루터나 다른 종교 개혁자들, 그리고 웨슬리 형제들이 이해한 의화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감리교는 또한 동서방 초기 교회의 가톨릭 전통에 속하는 의화 교리의 요소들도 언제나 포용해 왔습니다. 이 때문에 감리교 자체의 의화 교리는 독특한 특징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루터교 신자들과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 이루어진 “의화 교리의 기초 진리에 대한 합의”를 손상시키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언어와 신학적 부연 설명, 그리고 강조점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상이성”(공동 선언문, 40항)과 관련하여, 감리교의 가르침은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습니다.
4.1 존 웨슬리에 의하면 원죄에 대한 교리는 본질적인 그리스도교의 교리입니다. 인간 본성의 타락은 스스로 치료할 수 없습니다. 타락의 파괴적인 결과는 선행은총의 보편적인 유용성에 의해 상쇄되었습니다.(설교문 85, 우리 자신의 구원을 위한 노력, Ⅲ. 4)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행(先行)적 활동에 근거한 것입니다. 웨슬리에 의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조력한다(assist)”는 것이지 인간의 응답을 “강요(force)”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설교문 63, 복음의 일반적 전파, 11항). 하나님의 은혜로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그 자신과 세상으로 하여금 화해를 이루어 왔고,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하나님과 화해를 돕도록 위임받고 능력을 부여받았습니다.(고린도후서 5:20)4.1 존 웨슬리에 따르면 원죄 교리는 본질적인 그리스도교 교리입니다. 인간 본성의 타락은 인간 스스로 치유할 수 없습니다. 타락의 파괴력은 선행 은총(先行 恩寵)을 누구나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상쇄됩니다(설교 85, “우리 자신의 구원을 위한 노력”, III.4). 인간이 하느님의 은총에 응답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하느님의 선행적(先行的) 활동 덕분입니다. 웨슬리에 따르면, 하느님의 은총은 인간의 응답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보조하는” 것입니다(설교 63, “만천하로의 복음 전파”, 11). 하느님의 은총으로 신자들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시키셨음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하느님과 화해하라고 간청하는(2코린 5,20) 임무와 능력을 부여받습니다.
4.2 죄의 용서와 의를 이루는 것, 의화와 성화 사이의 깊은 연관성은 의화에 관한 성경의 교리 중에서 감리교적 이해에 있어서 언제나 중요하게 여겨왔습니다. 존 웨슬리는 구원을 하나님의 은혜의 이중 활동으로 보았습니다. “의화로 우리는 죄의 허물에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으로 회복됩니다. 성화로 우리는 죄의 능력과 뿌리에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됩니다.(설교 85, II.1) 하나님과의 친교를 이루는 구속적인 용납과 우리 삶의 창조적 갱신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운 역사입니다.4.2 죄의 용서와 의를 이루는 것, 의화와 성화의 깊은 관계는 감리교가 의화에 관한 성경의 교리를 이해하는 데에서 언제나 핵심이 되어 왔습니다. 존 웨슬리는 구원에서 하느님의 은총이 이중으로 작용한다고 보았습니다. “의화로 우리는 죄의 허물에서 구원받아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성화로 우리는 죄의 세력과 뿌리에서 구원받아 하느님의 형상으로 다시 돌아갑니다.”(설교 85, II.1). 구원을 통하여 하느님과 이루는 친교로 들어가는 것과 우리 삶을 새롭게 하는 쇄신은 모두 온전히 하느님 은총의 작용입니다.
4.3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롬 4:16) 받는 구원이라는 바울의 말은 감리교 운동의 좌우명이 되었습니다. 이 운동은 웨슬리 형제와 그 친구들이 믿음으로만 얻는 구원의 해방시키는 복음을 체험한 이후 하나의 선교 운동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사람이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 뿐입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삶 안에서 구원하고 구속하며 치유하고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의 역사에 투신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그리스도교 신앙은 언제나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갈 5:6)입니다.4.3 구원은 “믿음에 따라 이루어지고 은총으로 주어진다.”(로마 4,16)라는 바오로의 말이 감리교 운동의 좌우명이 되었습니다. 감리교 운동은 웨슬리 형제와 그 친구들이 믿음으로만 얻는 구원의 해방시키는 복음을 체험한 이후 하나의 선교 운동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인간이 믿음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하느님의 은총 덕분입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우리 삶 안에서 구원하고 구속하며 치유하고 새롭게 하는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의 활동에 투신합니다. 그러므로 참된 그리스도교 신앙은 언제나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갈라 5,6)입니다.
4.4 믿음이나 사랑 둘 다 인간의 노력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에로 하나님의 부르심과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인 우리에게 부어짐으로써 하나님의 구원의 실재에 포함되는 것입니다.4.4 믿음도 사랑도 인간의 노력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신앙으로의 부르심과 우리에게 부어 주신 하느님의 사랑으로 우리 인간이 하느님의 구원 실재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4.5 감리교의 가르침과 설교, 예식과 찬양에 보면 은총의 신학은 우리 죄에 대한 용서에 대한 확증 뿐만 아니라 우리가 죄의 권세에서 해방된다는 약속도 담겨 있습니다. 감리교신학은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롬6:22)라고 한 바울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왔습니다. 이로 인해 웨슬리는 “그리스도인의 완전” 또는 “완전한 성화”(살전 5:23 참조)의 교리를 발전시켜 이를 감리교 가르침의 핵심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이 교리는 감리교 운동의 역사 속에서 다른 해석들이 있어 왔지만 감리교의 가르침에 있어서 다섯가지 요소는 언제나 명확합니다.4.5 감리교의 가르침과 설교, 전례와 성가에서, 은총의 신학은 우리 죄의 용서에 대한 보증뿐만 아니라 우리가 죄의 권세에서 해방된다는 약속도 담고 있습니다. 감리교 신학은 “이제 여러분이 죄에서 해방되고 하느님의 종이 되어 얻는 소득은 성화로 이끌어 줍니다. 또 그 끝은 영원한 생명입니다.”(로마 6,22)라고 한 바오로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웨슬리는 ‘그리스도인의 완덕’ 또는 ‘완전한 성화’(1테살 5,23 참조)의 교리를 발전시키고 이를 감리교 가르침의 핵심으로 여겼습니다. 이 교리는 감리교 운동의 역사를 거쳐 오면서 그 해석에 차이가 있기는 하였지만,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가르침은 언제나 명백합니다.
a) “완전한 성화” 또는“그리스도인의 완전”은 바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마22:37-39; 요일 2:5 참조)입니다.a) ‘완전한 성화’ 또는 ‘그리스도인의 완덕’은 바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주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마태 22,37-39; 1요한 2,5 참조)입니다.
b)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하나님께만 속한 절대적인 완전이 아니라 “무지, 실수, 나약함, 유혹에서 면제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웨슬리설교 40,”그리스도인의 완전“)b) ‘그리스도인의 완덕’은 하느님께만 속한 절대적인 완전함이 아니며, “무지나 오류, 나약함, 유혹에서 면제되는 것을 뜻하지도 않습니다”(웨슬리 설교 40, “그리스도인의 완덕”, I.9).
c) 비록 우리 전 존재가 성령을 통하여 우리 마음속에 부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진다고 할지라도 (롬5:5) 이는 언제나 하나님의 선물이고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이지 우리 인간의 공로나 업적은 아닙니다.c) 우리의 온 존재가 성령을 통하여 우리 마음에 부어 주신 하느님 사랑으로 채워진다고 해도(로마 5,5), 이는 언제나 하느님의 선물이고 하느님 은총의 작용이지 우리 인간의 공로나 업적이 아닙니다.
d) 죄를 정복하리라는 소망으로 인해 죄의 권세에 의해 다시 타락하거나 사로잡힐 위험에 대해 부인하거나 경시해서는 안됩니다. d) 죄를 정복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다시 타락하여 죄의 권세에 사로잡힐 위험을 부인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요한 1서 1장 6-9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일 우리가 하느님과 친교를 나눈다고 말하면서 어둠 속에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진리를 실천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빛 속에 계신 것처럼 우리도 빛 속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서로 친교를 나누게 되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줍니다. 만일 우리에게 죄가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우리 안에 진리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고백하면, 성실하고 의로우신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e) 하나님의 은총으로 의화되고 성화된 이들은 전 생애 기간 동안 유혹과 죄와 투쟁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투쟁 가운데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죄의 세력을 깨뜨리셨다는 복음의 약속으로 힘을 얻습니다. 비록 의화된 이들의 삶 안에 “옛 아담의 이기적 욕망으로 하나님을 거스리는 것”(JDDJ 28항)이 계속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총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의로 지배”(롬5:21)합니다.e) 하느님의 은총으로 의화되고 성화된 이들은 일생에 걸쳐서 유혹과 죄와 투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투쟁에서 그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죄의 세력을 무찌르셨다는 복음의 약속으로 힘을 얻습니다. 비록 의화된 이들의 삶 안에 “옛 아담의 이기적 욕망 안에서 하느님을 거스르는 것”(공동 선언, 28항)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해도,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는 의로움으로 지배”(로마 5,21)합니다.
4.6 감리교인들에게 율법과 복음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에 관한 표현입니다. 생명과 행복의 길로 이끌기 위하여(신30:15~20) 당신의 사랑 안에서 하나님은 율법을 주셨고, 이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으로 요약됩니다. 우리 인간은 자력으로 이 길을 따를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실패했고, 율법은 우리의 죄를 정죄하고 깨닫게 합니다.(롬3:21 참조)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가운데 계시되고, 표현된 사랑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비록 율법은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단죄할 아무 권한도 없지만 사랑의 계명에 요약된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향해 인도하는 긴요한 길잡이로 남아 있습니다.4.6 감리교 신자들은 율법과 복음을 모두 하느님 말씀과 하느님 뜻의 표현으로 여깁니다. 생명과 행복의 길로 이끌기 위하여(신명 30,15-20 참조) 하느님께서는 당신 사랑으로 율법을 주셨고, 이는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으로 요약됩니다. 우리 인간은 혼자 힘으로는 이 길을 따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였으므로 율법은 이제 우리 죄를 드러내고 비난하는 역할을 합니다(로마 3,20 참조).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으로 계시되고 표현된 사랑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율법은 이제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단죄할 어떤 권한도 없지만 사랑의 계명에 요약된 대로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한 불가결한 지침으로 남아 있습니다.
4.7 믿음의 확신과 구원의 확신은 언제나 감리교 설교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확신은 소유의 확실성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한 관계성의 신뢰입니다. 그 관계성은 “은총의 수단”을 사용하는 것으로 특히 성서를 연구하고 성찬에 참여함으로써 사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하나님에 의해 제정된 것으로, 그분이 우리에게 은총을 전달하기 위한 외적 표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롬8:16)라는 성령의 증언에 의해 확신케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자들의 삶 속에 있는 평화와 기쁨의 근원입니다. 웨슬리적 표현으로 “거룩성”과 “행복함” 모두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4.7 믿음의 확신과 구원의 확신은 언제나 감리교 설교에서 핵심이 되어 왔습니다. 그러한 확신은 소유의 확실성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 안에 세워지는 관계의 신뢰성으로 여겨집니다. 이러한 관계는 ‘은총의 수단’을 사용함으로써, 특히 성경을 연구하고 주님의 만찬에 참여함으로써 실현됩니다. 이러한 것들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당신 은총을 전달해 주시고자 제정하신 외적 표지들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성령의 증언으로(로마 8,16) 얻게 되는 확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이들의 삶에서 평화와 기쁨의 원천이 됩니다. 웨슬리의 표현에 따르면 ‘거룩함’과 ‘행복’ 모두 하느님 은총의 선물입니다.
4.8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갈5:6)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삶에서 얻는 모든 선(善)의 근원으로 보입니다. 경건 생활과 자비의 사역은 예수를 따르는 자들의 삶 속에 있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이러한 사역은 또한 하나님의 선교영역뿐만 아니라 가난한 이들과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필요로 하는 자들을 위한 목회사역에 있어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그들의 삶을 살고, “하나님의 동역자”(고전3:7)로서 성도들을 돕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활동은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입니다.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루기 위한 일하라”는 설교에서 존 웨슬리가 말한 것처럼(빌 2:12) “하나님이 일하시니 너희도 일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일하시니, 너희도 일해야만 한다.”(설교 85, III. 2).고 했습니다.4.8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갈라 5,6)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삶에서 비롯되는 모든 선의 근원으로 여겨집니다. 신심 활동과 자비의 활동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의 삶 안에서 성령이 맺는 열매들입니다. 그러한 활동은 또한 신자들이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는 삶을 살고 하느님의 선교, 그리고 가난한 이들과 하느님 사랑을 가장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한 봉사에서 “하느님의 협력자”(1코린 3,9)가 될 수 있게 돕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활동은 하느님 은총의 작용입니다. 이를 두고 존 웨슬리는 “우리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힘써라”(필리 2,12)는 그의 설교에서, “하느님께서 일하시니 여러분도 일할 수 있고, 하느님께서 일하시니 여러분도 일해야 합니다.”(설교 85, III.2)라고 말하였습니다.
5. 우리 감리교 신자들은 이러한 합의에 기초하여, 루터교회와 몇 나라의 감리교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한 교회에 속해 있음을 서로 인정하고 강단과 제단의 온전한 친교를 선언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우리의 깊은 희망은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의화교리에 대한 우리의 공동 이해를 선언함으로써 다른 나라의 루터교회들과 또 로마 가톨릭 교회와 더욱 친밀한 관계성을 갖도록 가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5. 우리 감리교 신자들은 이러한 합의의 토대 위에 몇몇 나라에서 루터 교회와 감리 교회들이 서로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의 교회에 속한 것으로 인정하고 말씀과 제단의 온전한 친교를 선언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의화 교리에 대한 우리의 공동 이해를 이렇게 선언함으로써, 머지않아 우리도 다른 나라의 루터 교회들과 또 로마 가톨릭 교회와 더욱 친밀한 관계를 수립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입니다.
공식 공동 선언 공식 공동 선언
이 성명서에서 세계감리교협의회와 그 소속 교회들은 루터교 세계연맹과 가톨릭 교회를 대표하여 1999년 10월31일 아욱스부르크에서 서명한 “의화교리에 관한 공동선언문”의 가르침에 근본적으로 교리적 동의를 선언합니다.이 성명서로 세계감리교협의회와 그 소속 교회들은 루터교 세계 연맹과 가톨릭 교회가 1999년 10월 31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서명한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문”의 가르침에 근본적으로 교리적 동의를 선언한다.
“의화교리에 관한 공동선언문”에 서명하는 동반 교회들은 세계감리교협의회와 그 소속 교회가 발표한 앞의 성명서를 함께 환영합니다. 이 성명서는 “의화교리에 관한 공동선언문”에서 표현된 의화교리의 기본 진리들에 대한 합의를 감리교도 동의한다는 선언이며 표명입니다.“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하는 당사자들은 세계감리교협의회와 그 소속 교회가 발표한 앞의 성명서를 함께 환영한다. 그 성명서는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문”에서 표현된 의화 교리의 기본 진리들에 대한 합의에 감리교도 동의한다는 선언이며 표명이다.
의화교리의 기본 진리들에 대한 공유된 선언을 수립하면서, 우리 세 교회는 신학연구와 교육, 설교에서 의화에 대한 공동 이해를 더욱 깊이 하도록 함께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의화 교리의 기본 진리들에 대한 공동의 선언을 바탕으로, 우리 세 당사자는 신학 연구와 교육과 설교에서 의화에 대한 공동 이해를 더욱 깊이 하도록 함께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
가톨릭교회, 루터교회와 감리교회는 현재의 성취와 실행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바라시는 그리스도의 뜻으로 온전한 친교와 세상을 향한 공동 증언을 위한 노력의 일부로 간주한다.가톨릭 신자들과 루터교 신자들과 감리교 신자들은 현재의 성취와 약속을 그리스도께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바라시는 온전한 친교와 세상을 향한 공동 증언을 위한 노력의 일부라고 본다.
arch/의화.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15/03/12 04:39 (바깥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