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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경배와_찬양에_왜_반대하니

이 글은 KjvProject 시리즈로 작성되었습니다.


HTML(<font size="5">)'경배와 찬양에 왜 반대하니?'HTML(</font>) HTML(<font size="3">)- KJV의 무고에 대한 너무나도 합당한 답변HTML(</font>)

HTML(<p align="right">)By. Ellif (http://www.perne.net)HTML(</p>)

* 일러두기 이 내용은 KJVist가 주장하는 Bible Guide to Christian Music([http://www.av1611.org/cqguide.html])의 오점과 맹점을 지적하고, 진정한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무엇인지에 대해 만들었습니다. 물론 그들의 말이 다 틀렸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하고 있는 일부 내용들은 진리에서 벗어난 내용들이 있기에, 이런 말이 그냥 내버려지도록 냅둘 수는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생각들로 만들었고, 주님의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부디 이 내용이 분열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영과 연합의 영 아래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의 한몸, 한 지체, 한 교회로의 회복으로의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 Ellif.


  • Michael W. Smith 의 찬양에 '예수'나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없으므로, 그리고 여러가지 이유로 KJVist들은 현대의 찬양이 진실되지 않고, '세상 것의 찬양'이다고 논하는데, 그러면 진짜 예수의 이름이 있어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인가?
  • 그에 앞서, 우리나라 찬양곡들부터 살펴보자. 과연, 그들의 주장대로, 예수나 하나님이 찬양에 없을까?
    당장 '예수'라는 것으로 시작되는 제목도 많다. '예수, 세상의 중심', '예수의 사랑이' 같은 것도 있지만, 제목이 없더라도, '구원이 온 땅에 솟네 하늘 가르고 온 예수'(구원), 'Spirit of God, Come in this place(Consuming Fire)', '성령의 불로 날 태우소서(Holy fire)', 그리고 '예수님 목마릅니다 오셔서 기름부으소서(성령의 불로)'등 예수나, 하나님이 들어가 있는 곡이 많다. 그리고, 최소한 국내 번역된 곡들은 '주'라도 꼭 들어가 있다.(대표적인 'Above all(모든 능력과 모든 권세)'의 번역에서도 마지막의 번역(Above all)을 '나의 주'로 했다) 또한, 그러한 경우라도, 하나님의 성품이 들어가 있어, 하나님에 대한 직접적인 찬양이 가능하다. (ex.'온 땅과 하늘의 주님', '햇살보다 밝게').
  • 그럼 예수님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You라고 말하는 것이 잘못된 것인가? 이건 완전 '당신'을 쓰지 말라는 일부 장로교 교단을 생각나게 한다. 그럼, 그러한 찬양이 잘못된 것인가? 아니다! 당장 '당신은 영광의 왕'과 '문들아 머리 들어라'가 당신이라는 말의 사용이 전혀 잘못되어 있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당신은 영광의왕, 당신은 평강의 왕, 당신은 하늘과 땅의 주, 당신은 정의의 아들
  천사들 무릎 꿇고, 예배하며 경배하네 영원한 생명 말씀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 주
  호산나 다윗의 아들께 호산나 불러 왕 중의 왕 높은 하늘에 영광을 예수 주 메시야네 (당신은 영광의 왕)

  문들아 머리들어라 들릴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영광의 왕 들어가시도록 영광의 왕 들어가신다
  영광의 왕 뉘시뇨 강하고 능하신 주로다 전쟁에 능하신 주시라 다 찬양 위대하신 왕
  왕께 만세 왕께 만세 당신은 영광의 왕이라 다 찬양 위대하신 왕 (문들아 머리 들어라)
  • 둘 다 당신. 즉 'You'를 사용하고 있는 부분인데, 이 가사들을 보고 나서 솔직히 대답해 봐라. 이 내용들이 특별히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 찬양하지 않고 있는가? 특히 두번째 곡은 사실상 시편가(Psalter)라고 해도 무방하겠는데 (시 24편에 실재로 가사 내용이 존재), 이 내용이 하나님을 영화롭지 못하게 하는가? 아. 그러고 보니까.. 너무나도 잘 알려진 '시편가' 기쁘다 구주 오셨네는 어떨까? 전체 가사를 실어보겠다.

<file>

1.Joy to the world! The Lord has come / Let earth receive her king / Let every heart, prepare Him room
And Heaven and nature sing / And Heaven and nature sing / And Heaven, and Heaven and nature sing
2.Joy to the world! The Saviour reigns / Let men their songs employ / While fields and floods,
rocks, hills and plains / Repeat the sounding joy / Repeat the sounding joy /Repeat, repeat the sounding joy
3.He rules the world / With truth and grace / And makes the nations prove /The glories of His righteousness
And wonders of His love / And wonders of His love / And wonders and wonders of His love

<file>

  • 이 찬양은 KJVist의 찬양관이 너무나도 삐뚤어졌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자, 그럼 여기서 Jesus나 God이 나왔는가? 아니다. 기껏해야 Lord, He 정도인데, 그러면 똑같은 논리로 이 찬양을 공격할 것인가? 아마 아닐 것이다. 자, 그러면 결론은 무엇인가? 결국 그들은 새로운 찬양이라는 이유로, 실재로 신실하게 새로운 찬양으로 예배하고 있음에도 불고하고 새로운 찬양에 대해 무고했다.. 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있을까? 완전 10년전에, 4/4박자에 갖춘마디로 시작된 합동찬송가만이 진정한 찬송이라고 말한 일부의 사람들1)과 다를 바가 없다.
  • 결정적으로, 확실한 오류 하나를 지적하고자 한다. 마이클 W. 스미스의 곡 중에서도 하나님에 대해 직접적으로 표현한 곳이 있다. 분명히 그가 작사 작곡한 곡이 틀림없는 만큼, 특히 반대글을 쓰신 분에게 제발 들으라고 하고 싶은 곡이다. 그가 이 Agnus dei(하나님의 어린양)를 한번 듣고 나서 할말이 있을지 궁금해진다.

<font>

Alleluia, Alleluia, For the Lord God Almighty reigns (x2) Alleluia
(You are) Holy Holy, Are you Lord God Almighty, Worthy is the name Worthy is the name (xs) Amen.

알렐루야 알렐루야, 전능하신 주 다스리네 (x2) 알렐루야
(주는)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 하나님 존귀하신 주 존귀하신 주 (xs) 아멘

</font>

정확하게 보여주기 위해 한영을 모두 수록했다. 당장 알렐루야부터 하나님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알다시피 (H)allelu+jah/ia는 '찬양하라+하나님'의 뜻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정확하게 God Almighty라고 표현해 주고 있다. KJVist들이 이럴때 아마 God을 god으로 해석하려 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가사는 정확히, '시퍼렇게' God Almighty로 되어있다. 한국어 번역으로도 정확하게 전능하신 주 하나님! 너무나도 정확하게, 하나님께서는 마이클 W.스미스의 손을 들어주고 계시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라는 가사가 있는데도, 왜 마이클 W.스미스를 공격하는가? 이미 그들의 참소는 힘을 잃었다.

* 찬양을 좋아하는 자들이 왜 찬양하는줄 아는가? 왜 시간 바쳐서 예배드리는 줄 아는가? 그것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기 위해서다. 왜 경배와 찬양 운동이 일어났는가? 그것을 하나님께서 진정히 원하셨기 때문이니까. 하나님은 그 시대에 맞게, 그 시대가 추구하는 바에 일하신다. 당연히 새 것을 새 포도주에 담고(마 9:17, 막 2:22, 눅 5:37-8), 새 찬양, 그리고 새 노래를 주님께 드려야 할 것이다(시 33:3, 40:3, 96:1, 98:1, 144:9, 149:1, 계 5:9). 특히 시 144:9를 보고 싶다.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열 줄 비파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KRRV)
오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새 노래를 부르며, 솔터리와 열 줄 악기로 주를 찬송하리이다. (KKJV)

그런데, 여기서 KJVist들은 새 노래가 '새로운 정신으로의 노래'라면서 반박할 것이다.2) 그러나 한가지만 기억하자. 우리가 새 예루살렘 할때, 새 예루살렘은 그들의 논리 그대로, 정신만 바뀐 도시인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계 21:10-22:5에서 보여주신 것처럼 그 외형까지 바꾸셨다! 우리가 부활할 때, 우리의 영이 정신적으로만 바뀌는가? 아니다! 새 몸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찌 사람들이 들어갔다 나왔다 할 수 있겠는가? (계 21:24-6) 따라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새 노래는, 단순히 새로운 정신으로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것까지 갖추었을 때 진정한 의미를 갖춘다.' 그리고 '열줄 비파'와 '솔터리'(양금 비슷한 악기이다)를 왜 쓰셨겠냐? '일상에서 쓰이는 악기로 우리가 주님을 찬양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한가지 더 지적하자. KJVist들은 드럼을 쓸 수 없다면서 드럼이 악마의 악기라고 지적한다. 그런데, 오르간은? 그런식으로 하면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악기 중에서 쓸 수 있는 악기가 얼마 될까? 시편이 쓰여지던 시대에는 피아노조차도 없었다. 그리고 오르간. 지금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지만, 종교개혁 시대에, 칼뱅은 어떻게 말했는지 아는가? “악마의 휘파람 소리”라고까지 말했다3). 그런데 지금 오르간이, 그러면 하나님을 높이는데 방해가 되는가? NEVER!다. KJVist들도 아마 오르간을 쓰는 데에는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칼뱅의 말대로 따라서 당장 오르간을 쓰지 않겠다는 믿음의 결정을 하겠는가? 아니다! 결정적으로 KJVist들의 잘못이다. 그들의 성경 해석이 틀렸음을 또한 보여주는 순간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드럼곡들 중에서 특별히, 예수전도단 캠퍼스 워십이나, 특히 다리 놓는 사람들의 어노인팅 2005에 들어 있는 '나의 왕께 찬양해'라는 곡을 꼭 들으면서 이해하기를 권한다. 그래서 드럼이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방해되는지, 꼭 이해하고 넘어가기 바란다.

* 하나님은, 하나님과 '완벽히' 반대되지 않는 것과 대치되지 않는 것에 대해 반대하시지 않는다.(눅 9:50) 오히려 그들을 사랑하신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은 사람을 묶고 속이는 사단이지,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이셨다.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와 만나기 어려우신 것이지, 원래부터 하나님은 사람을 좋아하셨다(창 2). 그 죄를 씻어주시기 위에 하나님께서 피를 흘리셨는데, 그리고 우리 죄를 말끔히 씻으셨고, 아직도 씻으시고 계신데, 왜? 그 사랑에 감사해야지, 옛날로 돌아가자고? 물론 신앙의 깊은 곳으로 돌아가는 데에는 옛날로 돌아가야 한다. '1907년 그 회개의 옛날로 돌아가야 한다'. 1998년 대선때 클린턴 대통령은 '미래'로 가겠다고 할때, '옛날'로 가겠다고 말한,그 당시 졌던 대통령 후보의 말이 기억난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흥마저, 하나님의 역사마저, 제한시키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즉, 무엇보다도 '예배의 마음'(Heart of Worship)이 중요하다. 악기가 어떠냐, 그 리듬이 무엇인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들로 예배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드려, 정말 흠향하실만한 제사, 즉 향기(계 5:8)를 하나님이 받으실 수 있게 하느냐는 것이다 (찬양이 성경에 없다고 하지만, '찬양은 곡조 있는 기도'라고 하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는가?) 악기가 어떠니, 곡조가 어떠니, 비트가 어떠니 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마음을 보라!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기도하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찬양하라! 우리의 심령을 드리라! 우리의 몸짓을 드리라! 손을 들고 찬양하라! 비파와 수금으로! harp & Bowl로! Praise & Worship으로! 때로는 Psalter로! Gregoriano Chant로! 때로는 신디로! 때로는 기타로! 때로는 또 드럼으로! 때로는 타악기로! 때로는 관악기로!! 심지어 '코스프레'로도 할 준비를 해야 한다. 여러분들은 그러한 마음이 있는가? 진정으로 '다윗이 그의 바지, 아니 치마가 흘러내릴 정도로 예배할 수 있겠는가'(삼하 6:14, 20-3)?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 KJVist들은 예배의 공간이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구별된 장소에서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근거로 히 2:12를 제시하고 있다.

말씀하시기를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교회 가운데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하셨으며 (KKJV)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KRRV)

그런데, 어느정도 지식이 있다면, 이런 말이 옳지 않은 것임을 알 것이다. 누가 그리스도의 교회가 구별된 장소 안이라고 했는가? 그리스도의 교회는 지체:즉 그리스도인 전부이다(고전 12). 즉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리스도인 자신이며, 또한 그리스도인의 집합체이며, 그리고 그들이 일단 나누인 건물이다.

교회는 신학적으로 '유형교회'(고전10:32.11:22,12:28)와 '무형교회'(엡1:22-23,3:10,21)로 말합니다. 유형교회는 보이는 건물 성전을 말하고,무형교회는 보이지 않는 영적 신자들을 말합니다.크리스챤들의 모임(행5:10,고전11:18등),그리스도의 몸(고전12:27등)을 말하고 어느때는 전체를 어느때는 개인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거듭난자나 안난자나 같이 섞여 있습니다. (from naver 지식인)
교회는 그 성격과 특징에 따라 유형 교회와 무형 교회, 전투적 교회와 승리적 교회, 조직적 교회와 유기적 교회로 구별할 수 있는데, 교회에 대한 이러한 구별은 각각 두 개의 다른 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가지는 양면성(兩面性)을 의미하는 것이다. (http://blog.naver.com/jjkkhh2232/50003803209)

즉 교회는 그리스도인인 내가 있을때 이 곳이 주의 성소이며(고전 3:16), 내가 있는 그곳 자체가 하나님의 거룩히 성별된 장소이다. 즉,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만 섬기기에 너무나도 안타까운 곳이다! 그것을 전하라고 하나님이 전도하라 하셨지(행 1:8) 그냥 마가의 다락방 안에 갇혀서 찬양하고 기도하라고 하신 곳은 아니다. 그들은 마가의 다락방 밖에서도 기도했다. 그리고 감옥에서도 찬송했다(행 16:25). 자. 그럼 감옥은 KJVist들의 해석에 의하면 지역 교회가 아니니까 그들이 찬송한 것은 커다란 죄인가? 한가지 이야기만 하고 이 파트를 끝내자. 작년(2005) 말, 모 클럽에 갈 기회가 있었다 (실제다). 별별 소리가 들려오는 그곳에서 말씀을 읽었다. 그리고 기도했다. 그러면 KVJist의 말대로 이것은 하나님께 예배한 것이 아닌가? 아니다! 그것은 땅을 밟은 것이고, 영적 전쟁이며, 하나님께 이미 예배한 것이다! 예배는 단지 교회에서만, 시간에 맞추어 모이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하고, 묵상하는 것 '모두를' 의미한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궁궐이나 초막이나''' 내 주 예수 '''계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찬송가 495장, 3절)

* 또 KJVist들은 우리의 찬양 가사가 전하는 내용이 명확(Clear)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현재의 CCM(이나 워십)들은, 하여튼 새 찬양들은, 예수님의 진리를 전하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면 M.스미스의 대표곡인 Above all을 살펴보자. 과연 그런지 확인해 보도록 하자. 특별히 잘 된 직역이 하나 있어서, 영어 가사와 그 번역을 게재한다.

Above all powers above all kings / Above all nature and all created things
Above all wisdom and all the ways of man / You were here before the world began
Above all kingdoms above all thrones / Above all wonders the world has ever known
Above all wealth and treasures of the earth / There's no way to measure what You're worth
Crucified laid behind a stone / You lived to die rejected and alone
Like a rose trampled on the ground / You took the fall and thought of me Above all

세상 모든 권력이나 모든 왕보다 먼저이신 / 세상 모든 자연이나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이신
세상 모든 지혜나 인간의 모든 행위보다도 먼저이신 / 당신께선 세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여기에 계셨나이다 
세상 모든 왕국이나 모든 보좌보다도 먼저이신 /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경이나 기적보다도 먼저이신
세상 모든 부나 보물보다도 먼저이신 당신이기에 / 당신께선 얼마나 존귀한 분이신지 우리는 알길이 없나이다
그런 당신께서 십자가에서 죽임당하고 어느 돌뒤에 뉘여져 있나이다 / 당신께선 죽기위해, 버림받기 위해
그래서 결국은 홀로 남기위해 이땅에 오셨나이다
마치 길가에 짓밝힌채 널부려져 있는 어느 장미꽃같이 / 그렇게 버림받기 위해...
당신께선 그 모든걸 받아들이셨나이다. 나를 세상 무엇보다도 먼저 생각하시면서...
(http://blog.naver.com/cross_7/50005223605)

일단 내용 자체에는 약간의 오역이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살펴보자. 예수님 외에, 모든 권력, 왕, 자연, 피조물, 지혜, 인간의 모든 행위, 나라, 보좌, 경이로움, 부, 지혜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있는가? 예수님 외에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며, 또 다시 계실'(계 4:8) 분이 계신가? 그런데 왜 Message가 불명확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대답해보라! 유구무언일 것을. 물론, Shout to the lord는 더욱 더 크게 하나님을 전할 것이다.(첫 줄 가사는 My jesus, My savior이다) 그리고 수 많은 하나님의 이름을 너무나도 분명하게 전하는 곡들이 많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하기에 다소 불명확한 곡일지라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의 기름부으심 안에서, 그리고 하나님과의 친밀감 아래에서 씌여지고 있는 것을 무시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라는 곡을 아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특히 7차교육과정을 밟고 있는 사람들은 안 볼 수 없는 곡이다: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으니까) 그리고 그 곡을 CCM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고, 가요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곡은 하나님을 엄연히 찬양하는 것이다. '당신의 쉴 자리를 빼앗는'. 즉 성령의 소욕과 육신의 소욕이 충돌하는(갈 5:17, 롬 7:23) 나의 모습을 고백하는 것이다! 죄에 대한 고백이 찬양이 왜 안되는가?

* KJVist들은 또한, 찬양의 목적이 예수만을 전하는 것이어야 한다며, 선교나, 하나님과의 대화, 훈련과 헌신, 희망과 격려, 긍정적 영향, 현재 사건에 말하기, 불분명한 것들 모두다 안된다고 말하면서, 찬양하는 것과 성경과 관련된 것만이 진정한 찬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예수를 전하는 것이 우리의 찬양 목적이 아닌가? 그냥 골방에 틀어박혀 찬양해야 하는가? 우리의 찬양은 그들의 시편 137편의 말대로 절대 이방 땅에서 불러지면 안되는가? 4) 어디, 시편 137편 좀 보자.

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2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3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4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5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6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 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 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7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그들의 말이 헐어 버리라 헐어 버리라 그 기초까지 헐어 버리라 하였나이다 8 멸망한 딸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복이 있으리로다 9 네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자는 복이 있으리로다 (KRRV)

문제는 선제조건이다. 3절의 말씀대로라면, '황폐케 한 자가 우리에게 노래를 청할 때(that carried us away captive required of us a song:KJV)' 우리는 우리의 찬양을 다른 사람들에게 부를 수 없다. 7절의 말씀대로라면,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자들이, 수치를 준 자들이 찬양을 듣기를 원할 때에 우리는 우리의 찬양을 다른 사람들에게 부를 수 없다. 이런 상황에 이러라면 나도 반대하겠다. 하나님도 '나의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않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고(사 42:8). 그런데, 지금 우리가 그러한 상황에 있는가? 우리가 지금 핍박받고 있는가? 그래서 그 상황 중에서 일본 순사나 공안이 자신들을 즐기기 위해 찬양을 부르라고 했는가? 아서라, 그런건 공안도 안시킨다. 오히려 부르지 말라고들 하지 5). 즉, 그 이외에 때애 하나님은 세상을 향해 찬양을 부르지 말라고 하신적은 없다. 오히려 하나님과 예수님은 찬양을 적극 권장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찬송을 받으시기 위해 우리를 지으셨다고 말하고 있고(사 43:21), 분명히 찬양의 장소는 제한되어 있지 않다(사 42:10,12,시 150:6 - 특히 '호흡이 있는 모든자'라는 것은 이방인까지 포함하고 있는 점을 참조하라). 예수님께서는 종려주일 때 호산나 호산나 하면서 예수님을 찬양하니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한테 찬양을 막으라고 하니까, 어린아이들과 젖먹이의 찬양을 주님께서 온전케 하셨다고(마 21:16), 돌들도 소리치리라고(눅 19:40)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건 이미 아는 사람들은 다 알 것으로 안다. 그러니, 세상을 향해 바깥에서도, 어느 곳에서나(호흡 있는 모든 것다 다 나와와서 주 찬양하라 - 이른 아침에도, 이른 저녁에도, 슬픔 다가와도, 기쁨 다가와도 - 찬양 찬양 저녁에도 찬양) 불러야 마땅한데, 왜 부르지 말라고 하는가! 이 '바리새인'들아!

* 물론 이들이 대 주제로 삼고 있는 주장은 맞다. 그리고 우리가 교만해지지 않았는지, 우리의 찬양이 정말 하나님을 높이기 보다 사람을 높이지는 않는지 check해 볼 필요는 있다. 특히, 이 부분은 한번쯤은 모두 다 읽고 생각해 보기 바란다.

  • 찬양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해야 한다 / 사람이 아닌.
  • 찬양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 / 세상을 위한 것이 아닌.
  • 찬양은 새로운 노래다 / 옛 노래가 아닌.
  • 찬양의 메세지는 분명해야 한다 / 애매하지 않은.
  • 찬양은 메세지를 강조해야 한다 / 음악이나 뮤지션이 아닌.
  • (찬양은 지역 교회 안에 있다 / 콘서트 홀이나 나이트 클럽 안이 아닌.) - 틀림.
  • 찬양은 영혼으로 공급받아야 한다 / 육체의 살이 아닌.
  • 찬양사역자들은 주님께 헌신되어야 한다 / 세상의 것이 아닌.

나는 여기에 몇가지를 첨가하고 싶다.

  • 찬양은 '예배의 마음'으로 - 즉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것이다 / 그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닌.
  • 찬양은 주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다. / 아무 생각없이 부르는 것이 아닌.
  • 찬양은 영적 전쟁이다 / 그냥 정신 팔려 부르는 것이 아닌.

*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You Raise me up'이나, '예수, 세상의 중심'이나, '거룩 거룩 거룩'이나, '기쁘다 구주 오셨네'나, '불길같은 성신여'나, 그것이 하나님을 높이는 마음, 그리고 하나님을 찾는 마음 안에 있어야 진정으로 우리가 예배하고, 그 마음을 드릴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You raise me up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이 있다고 하더라도, 가요처럼 불러지고, 그렇게 생각될 때에 (ex)아.. Westlife가 부른 곡이야? 으음.. 좋은 곡이겠네..) 우리는 찬양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거룩 거룩 거룩'을 불러도, 그 마음에 하나님의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찬양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찬양은 '하나님의 마음에서 우러나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릴 때 완성된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지, 가사? 음악? 악기? 그건 그 다음이다. 심지어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사가 있더라도, 그 언어를 모르는 다른 사람이 전혀 어떠한 Reminder가 없이 들었을 때, 누가 그것이 찬양일지 알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그레고리안 성가'라는게 있는줄 알면서도, 그리고 좋은 시편가가 많이 들어 있으면서도, 그걸 회중에서 사용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가 '라틴어를 모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리는 유다인들이 율법 낭송 듣는걸 듣고 뭐라고 생각해야 할지 모를 수도 있다. 그건 우리가 '히브리어를 모르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교회에서 시편가를 쓰지 않는가? 그건 우리가 영어를 모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좋은 영어 가사가 있는 찬양(과 CCM)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배우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냥 '좋은 곡' 정도로만 들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이 점을 주의하라'!

* 이것으로 이에 대한 말을 마치고자 한다. 나는 찬양이 앞으로도 발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특별히 Spontaneous적인 부분에서 기름부으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harp & Bowl (수금과 금대접)6)이 각 교회 안으로 퍼져나가기를 바라는 사람 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하나님이 먼저이고, 하나님이 중심이 된 찬양을 드리기를 원한다. 나는 워십퍼이기를 원한다. 예배자이기를 원한다, 그리고 경배자이기를 원한다.

HTML(<p align="right">)LIH, in 060727 (1st)HTML(</p>)


* 결론

  • 일부 KJVist들은 현재 CCM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찬양의 내용을 들여다 보면, 그들의 주장이 무고한 참소임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 진정한 찬양과 예배, 그리고 경배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드릴 때 발생하는 것이지, 그 가사가 어떠하냐, 노래가 어떠하냐, 악기가 어떠하냐에 구분 받지 않는다.
  • 그리스도의 교회는 유형 교회를 의미하는 것만이 절대 아니다, 우리가 있는 곳이 하나님의 성전이고, 하나님의 곳이므로,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찬양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그분이 원하시는 일이다.
  • 진정한 찬양은 가사에 구애받지 않고, 악기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예배의 마음을 가졌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Reference

1) 최용덕, 찬미예수 500 부록. 찬양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다면 꼭 읽어야 할 부분이다. 물론 낮해밤달 1996년판에도 좋은 글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이분 사역의 백미는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2) I didn't change intentionally &#65533; but within six months, the ONLY music I wanted to listen to and play was real Christian Music. Music that praised my Lord and Savior! My desire and love for rock music was replaced by a NEW SONG &#65533; even PRAISE unto our God! Just as 2 Corinthians 5:17 says (and God cannot LIE - Titus 1:2) “all things are become NEW” and the very FIRST thing God “makes new” is a NEW SONG! (원 thread에서)

3) 주수일씨 찬양강의 시리즈에 이런 내용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4) '거리에서 전도를 하려면 거리 설교를 해야 하지 음악은 복음을 전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이방인들 앞에서는 하나님의 노래를 민망해서라도 안 부르는 것이 성경의 판결입니다. (시 137)' (http://moogi.new21.org/av1611/index.htm)

5) 하늘에 속한 사람, 윈 형제. 홍성사.

* 다음 자료들은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낮해밤달 1996년 찬양관련 연재. http://hae-dal.com/old/19960705.html http://hae-dal.com/old/19960804.html http://hae-dal.com/old/19960903.html http://hae-dal.com/old/19961004.html 찬미예수 500, 싱 코이노이아 ** 회중을 춤추게하는 예배 인도자, 팀크라우터, 예수전도단,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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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용덕, 찬미예수 500 부록. 찬양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다면 꼭 읽어야 할 부분이다. 물론 낮해밤달 1996년판에도 좋은 글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이분 사역의 백미는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글/경배와_찬양에_왜_반대하니.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15/03/12 04:38 (바깥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