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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의화 [2012/01/26 14:12] – ellif d.a | arch:의화 [2015/03/12 04:39] (현재) – 바깥 편집 127.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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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하나님께만 속한 절대적인 완전이 아니라 “무지, 실수, 나약함, 유혹에서 면제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웨슬리설교 40,”그리스도인의 완전“)|b) ‘그리스도인의 완덕’은 하느님께만 속한 절대적인 완전함이 아니며, “무지나 오류, 나약함, 유혹에서 면제되는 것을 뜻하지도 않습니다”(웨슬리 설교 40, “그리스도인의 완덕”, I.9).| | |b)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하나님께만 속한 절대적인 완전이 아니라 “무지, 실수, 나약함, 유혹에서 면제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웨슬리설교 40,”그리스도인의 완전“)|b) ‘그리스도인의 완덕’은 하느님께만 속한 절대적인 완전함이 아니며, “무지나 오류, 나약함, 유혹에서 면제되는 것을 뜻하지도 않습니다”(웨슬리 설교 40, “그리스도인의 완덕”, I.9).| |
|c) 비록 우리 전 존재가 성령을 통하여 우리 마음속에 부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진다고 할지라도 (롬5:5) 이는 언제나 하나님의 선물이고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이지 우리 인간의 공로나 업적은 아닙니다.|c) 우리의 온 존재가 성령을 통하여 우리 마음에 부어 주신 하느님 사랑으로 채워진다고 해도(로마 5,5), 이는 언제나 하느님의 선물이고 하느님 은총의 작용이지 우리 인간의 공로나 업적이 아닙니다.| | |c) 비록 우리 전 존재가 성령을 통하여 우리 마음속에 부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진다고 할지라도 (롬5:5) 이는 언제나 하나님의 선물이고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이지 우리 인간의 공로나 업적은 아닙니다.|c) 우리의 온 존재가 성령을 통하여 우리 마음에 부어 주신 하느님 사랑으로 채워진다고 해도(로마 5,5), 이는 언제나 하느님의 선물이고 하느님 은총의 작용이지 우리 인간의 공로나 업적이 아닙니다.| |
|d) 죄를 정복하리라는 소망으로 인해 죄의 권세에 의해 다시 타락하거나 사로잡힐 위험에 대해 부인하거나 경시해서는 안됩니다.|d) 죄를 정복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다시 타락하여 죄의 권세에 사로잡힐 위험을 부인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 |d) 죄를 정복하리라는 소망으로 인해 죄의 권세에 의해 다시 타락하거나 사로잡힐 위험에 대해 부인하거나 경시해서는 안됩니다. |d) 죄를 정복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다시 타락하여 죄의 권세에 사로잡힐 위험을 부인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요한 1서 1장 6-9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일 우리가 하느님과 친교를 나눈다고 말하면서 어둠 속에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진리를 실천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빛 속에 계신 것처럼 우리도 빛 속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서로 친교를 나누게 되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줍니다. 만일 우리에게 죄가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우리 안에 진리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고백하면, 성실하고 의로우신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
|e) 하나님의 은총으로 의화되고 성화된 이들은 전 생애 기간 동안 유혹과 죄와 투쟁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투쟁 가운데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죄의 세력을 깨뜨리셨다는 복음의 약속으로 힘을 얻습니다. 비록 의화된 이들의 삶 안에 “옛 아담의 이기적 욕망으로 하나님을 거스리는 것”(JDDJ 28항)이 계속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총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의로 지배”(롬5:21)합니다.|e) 하느님의 은총으로 의화되고 성화된 이들은 일생에 걸쳐서 유혹과 죄와 투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투쟁에서 그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죄의 세력을 무찌르셨다는 복음의 약속으로 힘을 얻습니다. 비록 의화된 이들의 삶 안에 “옛 아담의 이기적 욕망 안에서 하느님을 거스르는 것”(공동 선언, 28항)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해도,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는 의로움으로 지배”(로마 5,21)합니다.| | |e) 하나님의 은총으로 의화되고 성화된 이들은 전 생애 기간 동안 유혹과 죄와 투쟁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투쟁 가운데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죄의 세력을 깨뜨리셨다는 복음의 약속으로 힘을 얻습니다. 비록 의화된 이들의 삶 안에 “옛 아담의 이기적 욕망으로 하나님을 거스리는 것”(JDDJ 28항)이 계속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총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의로 지배”(롬5:21)합니다.|e) 하느님의 은총으로 의화되고 성화된 이들은 일생에 걸쳐서 유혹과 죄와 투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투쟁에서 그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죄의 세력을 무찌르셨다는 복음의 약속으로 힘을 얻습니다. 비록 의화된 이들의 삶 안에 “옛 아담의 이기적 욕망 안에서 하느님을 거스르는 것”(공동 선언, 28항)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해도,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는 의로움으로 지배”(로마 5,21)합니다.| |
|**4.6** 감리교인들에게 율법과 복음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에 관한 표현입니다. 생명과 행복의 길로 이끌기 위하여(신30:15~20) 당신의 사랑 안에서 하나님은 율법을 주셨고, 이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으로 요약됩니다. 우리 인간은 자력으로 이 길을 따를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실패했고, 율법은 우리의 죄를 정죄하고 깨닫게 합니다.(롬3:21 참조)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가운데 계시되고, 표현된 사랑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비록 율법은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단죄할 아무 권한도 없지만 사랑의 계명에 요약된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향해 인도하는 긴요한 길잡이로 남아 있습니다.|**4.6** 감리교 신자들은 율법과 복음을 모두 하느님 말씀과 하느님 뜻의 표현으로 여깁니다. 생명과 행복의 길로 이끌기 위하여(신명 30,15-20 참조) 하느님께서는 당신 사랑으로 율법을 주셨고, 이는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으로 요약됩니다. 우리 인간은 혼자 힘으로는 이 길을 따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였으므로 율법은 이제 우리 죄를 드러내고 비난하는 역할을 합니다(로마 3,20 참조).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으로 계시되고 표현된 사랑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율법은 이제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단죄할 어떤 권한도 없지만 사랑의 계명에 요약된 대로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한 불가결한 지침으로 남아 있습니다.| | |**4.6** 감리교인들에게 율법과 복음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에 관한 표현입니다. 생명과 행복의 길로 이끌기 위하여(신30:15~20) 당신의 사랑 안에서 하나님은 율법을 주셨고, 이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으로 요약됩니다. 우리 인간은 자력으로 이 길을 따를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실패했고, 율법은 우리의 죄를 정죄하고 깨닫게 합니다.(롬3:21 참조)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가운데 계시되고, 표현된 사랑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비록 율법은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단죄할 아무 권한도 없지만 사랑의 계명에 요약된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향해 인도하는 긴요한 길잡이로 남아 있습니다.|**4.6** 감리교 신자들은 율법과 복음을 모두 하느님 말씀과 하느님 뜻의 표현으로 여깁니다. 생명과 행복의 길로 이끌기 위하여(신명 30,15-20 참조) 하느님께서는 당신 사랑으로 율법을 주셨고, 이는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으로 요약됩니다. 우리 인간은 혼자 힘으로는 이 길을 따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였으므로 율법은 이제 우리 죄를 드러내고 비난하는 역할을 합니다(로마 3,20 참조).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으로 계시되고 표현된 사랑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율법은 이제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단죄할 어떤 권한도 없지만 사랑의 계명에 요약된 대로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한 불가결한 지침으로 남아 있습니다.| |
|**4.7** 믿음의 확신과 구원의 확신은 언제나 감리교 설교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확신은 소유의 확실성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한 관계성의 신뢰입니다. 그 관계성은 “은총의 수단”을 사용하는 것으로 특히 성서를 연구하고 성찬에 참여함으로써 사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하나님에 의해 제정된 것으로, 그분이 우리에게 은총을 전달하기 위한 외적 표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롬8:16)라는 성령의 증언에 의해 확신케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자들의 삶 속에 있는 평화와 기쁨의 근원입니다. 웨슬리적 표현으로 “거룩성”과 “행복함” 모두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4.7** 믿음의 확신과 구원의 확신은 언제나 감리교 설교에서 핵심이 되어 왔습니다. 그러한 확신은 소유의 확실성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 안에 세워지는 관계의 신뢰성으로 여겨집니다. 이러한 관계는 ‘은총의 수단’을 사용함으로써, 특히 성경을 연구하고 주님의 만찬에 참여함으로써 실현됩니다. 이러한 것들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당신 은총을 전달해 주시고자 제정하신 외적 표지들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성령의 증언으로(로마 8,16) 얻게 되는 확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이들의 삶에서 평화와 기쁨의 원천이 됩니다. 웨슬리의 표현에 따르면 ‘거룩함’과 ‘행복’ 모두 하느님 은총의 선물입니다. | |**4.7** 믿음의 확신과 구원의 확신은 언제나 감리교 설교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확신은 소유의 확실성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한 관계성의 신뢰입니다. 그 관계성은 “은총의 수단”을 사용하는 것으로 특히 성서를 연구하고 성찬에 참여함으로써 사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하나님에 의해 제정된 것으로, 그분이 우리에게 은총을 전달하기 위한 외적 표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롬8:16)라는 성령의 증언에 의해 확신케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자들의 삶 속에 있는 평화와 기쁨의 근원입니다. 웨슬리적 표현으로 “거룩성”과 “행복함” 모두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4.7** 믿음의 확신과 구원의 확신은 언제나 감리교 설교에서 핵심이 되어 왔습니다. 그러한 확신은 소유의 확실성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 안에 세워지는 관계의 신뢰성으로 여겨집니다. 이러한 관계는 ‘은총의 수단’을 사용함으로써, 특히 성경을 연구하고 주님의 만찬에 참여함으로써 실현됩니다. 이러한 것들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당신 은총을 전달해 주시고자 제정하신 외적 표지들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성령의 증언으로(로마 8,16) 얻게 되는 확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이들의 삶에서 평화와 기쁨의 원천이 됩니다. 웨슬리의 표현에 따르면 ‘거룩함’과 ‘행복’ 모두 하느님 은총의 선물입니다.| |
|**4.8**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갈5:6)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삶에서 얻는 모든 선(善)의 근원으로 보입니다. 경건 생활과 자비의 사역은 예수를 따르는 자들의 삶 속에 있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이러한 사역은 또한 하나님의 선교영역뿐만 아니라 가난한 이들과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필요로 하는 자들을 위한 목회사역에 있어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그들의 삶을 살고, “하나님의 동역자”(고전3:7)로서 성도들을 돕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활동은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입니다.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루기 위한 일하라”는 설교에서 존 웨슬리가 말한 것처럼(빌 2:12) “하나님이 일하시니 너희도 일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일하시니, 너희도 일해야만 한다.”(설교 85, III. 2).고 했습니다.|**4.8**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갈라 5,6)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삶에서 비롯되는 모든 선의 근원으로 여겨집니다. 신심 활동과 자비의 활동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의 삶 안에서 성령이 맺는 열매들입니다. 그러한 활동은 또한 신자들이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는 삶을 살고 하느님의 선교, 그리고 가난한 이들과 하느님 사랑을 가장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한 봉사에서 “하느님의 협력자”(1코린 3,9)가 될 수 있게 돕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활동은 하느님 은총의 작용입니다. 이를 두고 존 웨슬리는 “우리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힘써라”(필리 2,12)는 그의 설교에서, “하느님께서 일하시니 여러분도 일할 수 있고, 하느님께서 일하시니 여러분도 일해야 합니다.”(설교 85, III.2)라고 말하였습니다.| | |**4.8**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갈5:6)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삶에서 얻는 모든 선(善)의 근원으로 보입니다. 경건 생활과 자비의 사역은 예수를 따르는 자들의 삶 속에 있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이러한 사역은 또한 하나님의 선교영역뿐만 아니라 가난한 이들과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필요로 하는 자들을 위한 목회사역에 있어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그들의 삶을 살고, “하나님의 동역자”(고전3:7)로서 성도들을 돕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활동은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입니다.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루기 위한 일하라”는 설교에서 존 웨슬리가 말한 것처럼(빌 2:12) “하나님이 일하시니 너희도 일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일하시니, 너희도 일해야만 한다.”(설교 85, III. 2).고 했습니다.|**4.8**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갈라 5,6)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삶에서 비롯되는 모든 선의 근원으로 여겨집니다. 신심 활동과 자비의 활동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의 삶 안에서 성령이 맺는 열매들입니다. 그러한 활동은 또한 신자들이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는 삶을 살고 하느님의 선교, 그리고 가난한 이들과 하느님 사랑을 가장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한 봉사에서 “하느님의 협력자”(1코린 3,9)가 될 수 있게 돕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활동은 하느님 은총의 작용입니다. 이를 두고 존 웨슬리는 “우리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힘써라”(필리 2,12)는 그의 설교에서, “하느님께서 일하시니 여러분도 일할 수 있고, 하느님께서 일하시니 여러분도 일해야 합니다.”(설교 85, III.2)라고 말하였습니다.| |
|**5.** 우리 감리교 신자들은 이러한 합의에 기초하여, 루터교회와 몇 나라의 감리교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한 교회에 속해 있음을 서로 인정하고 강단과 제단의 온전한 친교를 선언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우리의 깊은 희망은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의화교리에 대한 우리의 공동 이해를 선언함으로써 다른 나라의 루터교회들과 또 로마 가톨릭 교회와 더욱 친밀한 관계성을 갖도록 가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5.** 우리 감리교 신자들은 이러한 합의의 토대 위에 몇몇 나라에서 루터 교회와 감리 교회들이 서로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의 교회에 속한 것으로 인정하고 말씀과 제단의 온전한 친교를 선언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의화 교리에 대한 우리의 공동 이해를 이렇게 선언함으로써, 머지않아 우리도 다른 나라의 루터 교회들과 또 로마 가톨릭 교회와 더욱 친밀한 관계를 수립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입니다.| | |**5.** 우리 감리교 신자들은 이러한 합의에 기초하여, 루터교회와 몇 나라의 감리교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한 교회에 속해 있음을 서로 인정하고 강단과 제단의 온전한 친교를 선언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우리의 깊은 희망은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의화교리에 대한 우리의 공동 이해를 선언함으로써 다른 나라의 루터교회들과 또 로마 가톨릭 교회와 더욱 친밀한 관계성을 갖도록 가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5.** 우리 감리교 신자들은 이러한 합의의 토대 위에 몇몇 나라에서 루터 교회와 감리 교회들이 서로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의 교회에 속한 것으로 인정하고 말씀과 제단의 온전한 친교를 선언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의화 교리에 대한 우리의 공동 이해를 이렇게 선언함으로써, 머지않아 우리도 다른 나라의 루터 교회들과 또 로마 가톨릭 교회와 더욱 친밀한 관계를 수립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입니다.| |
^ 공식 공동 선언 ^ 공식 공동 선언 ^ | | **공식 공동 선언** | **공식 공동 선언** | |
|이 성명서에서 세계감리교협의회와 그 소속 교회들은 루터교 세계연맹과 가톨릭 교회를 대표하여 1999년 10월31일 아욱스부르크에서 서명한 “의화교리에 관한 공동선언문”의 가르침에 근본적으로 교리적 동의를 선언합니다.|이 성명서로 세계감리교협의회와 그 소속 교회들은 루터교 세계 연맹과 가톨릭 교회가 1999년 10월 31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서명한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문”의 가르침에 근본적으로 교리적 동의를 선언한다.| | |이 성명서에서 세계감리교협의회와 그 소속 교회들은 루터교 세계연맹과 가톨릭 교회를 대표하여 1999년 10월31일 아욱스부르크에서 서명한 “의화교리에 관한 공동선언문”의 가르침에 근본적으로 교리적 동의를 선언합니다.|이 성명서로 세계감리교협의회와 그 소속 교회들은 루터교 세계 연맹과 가톨릭 교회가 1999년 10월 31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서명한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문”의 가르침에 근본적으로 교리적 동의를 선언한다.| |
|“의화교리에 관한 공동선언문”에 서명하는 동반 교회들은 세계감리교협의회와 그 소속 교회가 발표한 앞의 성명서를 함께 환영합니다. 이 성명서는 “의화교리에 관한 공동선언문”에서 표현된 의화교리의 기본 진리들에 대한 합의를 감리교도 동의한다는 선언이며 표명입니다.|“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하는 당사자들은 세계감리교협의회와 그 소속 교회가 발표한 앞의 성명서를 함께 환영한다. 그 성명서는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문”에서 표현된 의화 교리의 기본 진리들에 대한 합의에 감리교도 동의한다는 선언이며 표명이다.| | |“의화교리에 관한 공동선언문”에 서명하는 동반 교회들은 세계감리교협의회와 그 소속 교회가 발표한 앞의 성명서를 함께 환영합니다. 이 성명서는 “의화교리에 관한 공동선언문”에서 표현된 의화교리의 기본 진리들에 대한 합의를 감리교도 동의한다는 선언이며 표명입니다.|“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하는 당사자들은 세계감리교협의회와 그 소속 교회가 발표한 앞의 성명서를 함께 환영한다. 그 성명서는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문”에서 표현된 의화 교리의 기본 진리들에 대한 합의에 감리교도 동의한다는 선언이며 표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