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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us Caritas est (nhio nao)는 베네딕트 16세의 첫 교령이다. 051215에 발표되었다.

개신교적 한국어 작업

감독들과 성직자, 그리고 부제들과, 신심있는 형제 자매, 그리스도인의 사랑안에 있는 모든 평신도들에게 보내는 교황 베네딕트 16세의 교령 편지 “DEUS CARITAS EST”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서론

1. “하나님은 사랑이시니라 사랑 안에 거하는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느니라” (요일 4:16b), 요한일서에 나오는 이 말씀은 기독교 신앙의, 그리스도인의 하나님의 형상과 인간의 형상의 결과와 그 운명에 대한 마음의 분명한 명확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같은 절에서, 사도 요한은 또한 기독교인의 삶의 요약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 이러한 말씀으로, 기독교인은 그의 삶에 근원적인 결정을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윤리적 손택이나 고상한 생각이 아니라, 새로운 수평선과 결정적인 방향을 주시는 사건, 사람과의 만남입니다. 요한복음은 이러한 만남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마다 …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이러한 사랑의 중요성을 알아,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이스라엘의 믿음의 핵심을 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새로운 깊이와 넓이를 더합니다. 경건했던 유다인들은 매일마다 하나님의 존재하심의 중심을 표현한 신명기의 말씀으로 매일마다 기도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 6:4-5) 예수님은 이웃에 대한 사랑의 명령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명령을 레위기에서 찾을 수 있는 하나의 가르침으로 통일하셨습니다.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레 19:18, (참, 마 12:29-31))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참, 요일 4:10), 사랑은 이제 단순한 “명령”이 아니며; 우리를 이끄신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에 대한 대답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계시는 세계에는 때때로 복수와, 심지어 증오와 폭력의 의무가 결합되어 있지만, 이 메시지는 알맞고, 적절합니다, 이러한 이유때문에, 나는 나의 첫 교령을 아낌없이 우리위에 베푸시고, 우리가 그 보답으로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어야 하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말하기 원합니다. 즉, 본질적으로, 이 편지의 두개의 메인 파트들은 이에 관련된 것이고, 이것들은 분명히 내부연락되어 있습니다. 이 중 첫번째 부분은 In a world where the name of God is sometimes associated with vengeance or even a duty of hatred and violence, this message is both timely and significant. For this reason, I wish in my first Encyclical to speak of the love which God lavishes upon us and which we in turn must share with others. That, in essence, is what the two main parts of this Letter are about, and they are profoundly interconnected. The first part is more speculative, since I wanted here—at the beginning of my Pontificate—to clarify some essential facts concerning the love which God mysteriously and gratuitously offers to man, together with the intrinsic link between that Love and the reality of human love. The second part is more concrete, since it treats the ecclesial exercise of the commandment of love of neighbour. The argument has vast implications, but a lengthy treatment would go beyond the scope of the present Encyclical. I wish to emphasize some basic elements, so as to call forth in the world renewed energy and commitment in the human response to God's love.

제 1부 : 구원사와 창조에 있는 사랑의 연합

언어의 문제

2.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은 우리 삶에 있어서 기초적인 것이며, 이는 하나님이 누구이신지와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제기합니다. 이러한 점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즉시 언어의 문제에 의해 우리 자신이 방해받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날, '사랑'이라는 단어는 가장 많이 쓰이지만 우리가 꽤다른 의미를 삽입하여 사용해서, 잘못 쓰이는 단어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교령이 주로 성경과 교회의 유전에 있는 사랑의 이해와 연습에 대해 주로 다루게 되겠지만, 우리는 간단히 다른 문화와 다른 현재의 사용을 가지고 있는 단어의 의미를 간단히 넘길 수 없는 것입니다.

처음으로 가장 넓은 의미적인 “사랑”의 범위를 생각해 봅시다 : 우리는 나라를 사랑하거나, 누군가의 직업을 사랑한다던가, 친구간에 사랑한다던가, 일을 사랑한다던가, 부모와 자식간에 사랑한다던가, 가족간에 사랑한다던가, 이웃과 하나님에 대해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의미의 다양성중에, 한가지 특정한 것: 몸과 영혼이 불가분하게 결합되고, 인간이 분명히 저항할 수 없는 행복의 약속에 빠져들게 되는 남자와 여자간의 사랑이 드러납니다. 이것은 분명히 큰 사랑의 개략이 될것입니다, 다른 종류의 사랑은 즉시 그 대조적인 것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모든 사랑의 형태가 기본적으로 하나라면, 그 사랑에서 많고 다양한 명시가 드러나는데, 이것이 하나의 현상일까요? 아니면 우리는 단지 완전히 다른 현상들을 같은 단어로 가리키는 것일까요?

“에로스”와 “아가페” - 다름과 연합

3. 계획되거나 의도되지 않았지만. 어떻게 해서든 인류를 넘어선 사랑을 표출하는 남자와 여자 사이의 이러한 사랑은, 고대 그리스인에 의해 에로스(eros)라 불리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즉시 다음을 알수 있습니다 : 그리스어 구약에는 이 '에로스'라는 단어가 단지 두번 나왔으며, 신약에서는 이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사랑의 그리스어 세가지 표현인 에로스, 필리아(Philiä 친구간의 우정), 그리고 아가페(Agape) 중에서, 신약 기자들은 그리스어 용례에서 별로 사용되지 않는 마지막 것을 선호했습니다. 필리아라는 단어는,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간의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서 깊은 의미가 추가되어서 사용됩니다. 아가페라는 언어로 새로운 사랑의 비젼을 제시함과 동시에, 에로스라는 단어를 피하려는 경향은 분명히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이해에 대해 새롭고 명백한 것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계몽과 함께 시작되어 좀더 차별적으로 성장한 기독교의 비판자들은, 이 새로운 요소를 철저히 부정적인 어떠한 것으로 보쳤습니다. 프렌드리히 니체에 의하면, 기독교는 에로스에 / 여기에서 이 독일 철학자는 넓게 잡힌 편견을 표출합니다:

The tendency to avoid the word eros, together with the new vision of love expressed through the word agape, clearly point to something new and distinct about the Christian understanding of love. In the critique of Christianity which began with the Enlightenment and grew progressively more radical, this new element was seen as something thoroughly negative. According to Friedrich Nietzsche, Christianity had poisoned eros, which for its part, while not completely succumbing, gradually degenerated into vice.[1] Here the German philosopher was expressing a widely-held perception: doesn't the Church, with all her commandments and prohibitions, turn to bitterness the most precious thing in life? Doesn't she blow the whistle just when the joy which is the Creator's gift offers us a happiness which is itself a certain foretaste of the Divine?

4. 하지만 이것이 그러한 경우일까요? 기독교가 에로스를 파괴할까요? 기독교 전의 세계를 들여다봅시다. 그리스인들은 다른 문화와 달리, 에로스를

4. But is this the case? Did Christianity really destroy eros? Let us take a look at the pre- Christian world. The Greeks—not unlike other cultures—considered eros principally as a kind of intoxication, the overpowering of reason by a “divine madness” which tears man away from his finite existence and enables him, in the very process of being overwhelmed by divine power, to experience supreme happiness. All other powers in heaven and on earth thus appear secondary: “Omnia vincit amor” says Virgil in the Bucolics—love conquers all—and he adds: “et nos cedamus amori”—let us, too, yield to love.[2] In the religions, this attitude found expression in fertility cults, part of which was the “sacred” prostitution which flourished in many temples. Eros was thus celebrated as divine power, as fellowship with the Divine.

deus_caritas_est.1296105417.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15/03/12 03:39 (바깥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