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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순종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를 위한 열망을 가슴에 간직하시고 간절히 기도하시고 또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열두 사도를 양성하셨습니다. 그리고 순종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고 주의 나라가 이땅에 임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의 길을 가셔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그 길을 가시고자 하실 때 사단은 맹렬하게 달려들어 그 길을 가지 못하도록 시험하고 유혹하였습니다. 사단의 수많은 유혹과 시험이 있었으나 세 번의 큰 유혹과 시험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께서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시기 위해 광야에서 40일간 금식기도하실 때였습니다. 사단이 천하 만국의 권세와 영광을 보여주며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것이 되리라” 시험하였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눅4:8)말씀으로 사단의 시험을 물리치시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는 길을 선택하여 가셨습니다. 두 번째는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목전에 두신 전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때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할수만 있으면 십자가의 죽음의 잔을 피하시고 싶으셨습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22:42) 이때 사단과의 영적인 전투가 얼마나 극심했던지 저자 누가는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눅22:44) 기록하였습니다. 세 번째는 골고다 산상의 십자가에 두 강도와 함께 못박혀 달리셨을 때였습니다. 양손과 양발이 십자가상에 못박혀 참혹한 고통이 파도처럼 밀려들때 백성은 서서 구경하며 관원들도 비웃어 말했습니다.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찌어다” (눅23:35) 군병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포도주를 주며 조롱하며 말했습니다.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눅23:37) 달린 행악자까지 예수님을 비방하여 말했습니다.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눅23:39)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지 못하도록 하는 사단의 최후의 시험이요 유혹이었습니다. 이 모든 사단의 맹렬한 시험과 유혹에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를 위하여 끝까지 십자가에서 내려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순종의 십자가의 길을 가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기까지 끝까지 순종의 십자가를 지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주의 나라가 이땅에 임하게 하셨습니다. 순종의 십자가를 끝까지 지시고 승리하신 주 예수님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존귀와 영광을 돌립니다. 제가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를 위하여 순종의 십자가를 끝까지 지시고 승리하신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를 위해 순종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가신 길을 따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시골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초등학교를 시골에서 마치고 서울에 있는 중고등학교를 거쳐서 1967년 서울약대 새내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의대를 낙방하고 원치 않는 약대에 입학했다는 깊은 열등감으로 방황하고 있을때 1학년 말 켐퍼스 친구로부터 Mothery Barry 목자님의 영어성경공부에 초청을 받게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2학년 초부터 효제동 25번지 노란건물에서 주일세시에 드리는 예배에 참석하여 이사무엘 선교사님이 전하시는 생명의 말씀을 듣기 시작하였고, 3월 봄학기부터 서울약대 켐퍼스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가 되었습니다. 제가 2학년 가을학기에 U.B.F에 처음으로 요회가 시작되었는데 당시 월요회는 서울의대와 간호학과 고려의대 중심이었고, 김현배 목자(현 시카고 선교사)가 세움을 받았습니다. 수요회는 서울문리대 법대 중심이었는데 이바울 목자가 세움을 받았습니다. 목요회는 서울약대 미대 중심이었는데 사람이 없어서 제가 세움을 받았습니다. 저는 아름답고 예술적인 서울 미대생들의 목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흥분되었습니다. 어찌하든지 힘있고 은혜로운 메시지를 전하여 인정을 받고 싶어 메시지 준비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때로는 강의시간에도 때로는 실험실시간에도 메시지 준비에 대한 생각으로 공부나 실험에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하여 메시지를 준비했으나 서울 미대생들한테 인정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중풍병자처럼 무력한 자신을 한탄하며 무기력한 목자생활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저를 목자님께서 혹시 요회목자에서 짜르지 않으실까 항상 불안해하였습니다. 그런데 목자님은 저를 불쌍히 여기셨는지 졸업할때까지 저를 한번도 짜르지 않고 계속해서 요회목자로 세워주시며 기도하여 주셨습니다. 저는 목자님을 통해서 중풍병자같은 죄인을 향하신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소망에 눈을 떠가게 되었습니다. 마가복음 역사가 왕성하게 일어나고 있던 3학년 봄 주님께서는 중풍병자같은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마가복음 2:5절 말씀으로 찾아와 주셨습니다.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제 심령에 뜨거워졌고 알수 없는 힘이 임하였습니다. 저는 주저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었고 걷고 뛰기 시작했습니다. 서울 미대생들을 향해서 두려움없이 담대히 메시지를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4학년 겨울에는 동파키스탄 구제를 위해서 서울 남산에 있던 드라마센타에서 가졌던 성탄예배와 성탄축하의 밤 드라마 초청장을 만들어 팔기시작했습니다. 그때 저는 초청장 티켇을 팔기위해 중앙청 약전국장실을 찾아갔는데 그가 당시돈 2000원을 주고 티켇을 사주었습니다. 이에 용기를 얻은 저는 담대하게 서울 중앙청 각 국장실 실장실 차관실 장관실을 찾아가 초청장을 팔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국회국방위원장 차지철 씨방에 들어가 차지철씨한데 5000원을 받고 표를 팔았고 차지철씨를 위해서 기도까지 해주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후보도 비서를 통해서 10000원에 티켇을 사주었는데, 당시 김대중대통령후보는 성탄축하의 밤때 보좌관들을 10여명을 데리고 드라마센타에 오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5분만 연설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하였는데 목자님이 (이사무엘 선교사님) 이를 거절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드라마 중간에 비서들을 데리고 바람을 일으키며 나갔습니다. 졸업후에 군대영장이 나와 조치원훈련소에서 신병훈련을 받고 27사단 사창리 의무중대에 자대 배치를 받았습니다. 이곳에는 사단에서 사고친 고참병들이 전역을 2-3개월 남겨두고 의무중대에 와서 놀며 제대날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자대배치를 받은 첫주일부터 영밖에 있는 교회에 가기 시작하였는데 이로인하여 고참병들로부터 저녁에 수송부 창고 식당등에 불려가 무수히 매를 맞았습니다. 가슴이 저려서 저녁에는 잠을 제대로 잘수가 없었고, 이들에게 맞아서 이가 부러지고 고막이 상하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와 같았고 모두에게 잊혀진 자와 같았습니다. 군대생활을 도저히 계속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몇 번이나 총기로 자해를 생각할만큼 사망의 그늘에 앉은 자가 되었습니다. 이때 보초를 서면서 시편을 읽기 시작하였는데 시편을 읽기 시작하면서 사망의 권세가 떠나가고 심령에 평강이 임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6개월후에 월남차출명령이 내려왔습니다. 강원도 화천에 있는 오음리 파월 교육대에서 4주동안 훈련을 받고 부산에서 군함을 탔습니다. 부산 항구에는 부산 여중고생들이 태극기를 들고 나와 흔들어 주었습니다. 군함을 타고 대서양을 남진하여 갈 때 파도로 인하여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다 토해내며 며칠후 월남 퀴논항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맹호사령부 의무중대로 배치를 받았습니다. 의무중대에서 1개월정도 근무를 하고 있을때 맹호 26연대 교회를 섬기던 군종병이 귀국을 하여 그 교회를 섬길 사람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사단 전체에서 그 교회를 섬길 사람을 찾기 시작했는데 그때 오음리에서 함께 훈련받은 신앙의 동료가 사단 군종참모를 섬기는 군종병이 되어 있었는데 그가 군종참모에게 나를 추천하였습니다. 군종참모가 저를 불러 '가겠느냐?' 물었습니다. 그때 저는 '제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6:8)하신 이사야서 말씀을 기억하고 '네 가겠나이다'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월남에서 1년6개월을 근무하는 동안 맹호 26연대 전진 교회에서 상주하며 매주일 낮, 밤, 수요일저녁 메시지를 전하고, 날마다 새벽기도를 인도하고 또 초소와 부대를 방문하여 내무반 예배를 인도하고 작전시에는 작전예배를 인도하고 헬기를 타고 다니며 각 중대와 소대와 초소를 방문하며 병사들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26연대 전진대대장과는 대대장실에서 일대일로 말씀공부를 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본국에 목자님께 전했을때 이 소식이 작전예배를 인도하는 사진과 함께 U.B.F 소식지 신문에 실렸고, 일용할양식 표지에까지 실렸고 저는 월남전의 용사라는 인정을 받기시작하였습니다. 이때부터 U.B.F 전국의 형제자매들이 편지를 보내주기 시작했는데 얼마나 많은 편지가 날마다 오는지 저는 맹호 사단내에서 편지를 가장 많이 받는 사람으로 유명해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제게 편지를 보낸 형제자매들에게 일일이 다 답장을 보내주었습니다.

월남근무 1년6개월 후 제대하고 귀국했을 때 목자님은 용사에게는 공주를 주는 것이다하시며 당시 이윤성 목자님과 약혼하는 큰 축복을 주시고 많은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1년여 남아있던 군생활을 마치고 제대하였을 때 목자님께서 저에게 종로학생회 책임목자직분을 주실줄로 기대하였습니다. 당시 이바울 목자님은 관악개척 목자로 세워주셨고, 나보다 1년 늦게나왔던 장만석 목자에게는 종로 학생회를 맡겨주셨고, 양마가 목자는 항상 목자님곁에서 강의안을 대필하며 강의안 프린트등 여러 섬기는 일을 맡고 있었는데 목자님의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게는 스탭미팅의 가장 말단 인턴목자로서 커피보이로부터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화장실 청소, 센타정리와 청소, 연탄갈기 저녁에는 센타 강단 단상에서 잠자며 모든 섬기는 훈련을 받게하셨습니다. 이러한 훈련이 거의 3년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저는 스탭미팅에 커피를 끓여서 쟁반에 바쳐 들어올때마다 몇 번이나 커피잔을 다 내동댕이 쳐버리고 고향앞으로 가고 싶었던 생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나의 내면을 꿰뚫어보신 목자님은 인턴훈련받기 시작한지 3개월만에 나의 훈련받는 자세가 제대로 되지않았다고 하시며 이윤성 목자와의 약혼을 공개적으로 취소하셨습니다. 그리고 센타에 걸려있던 작전을 떠나는 병사들앞에서 예배를 인도하던 저의 사진들을 다 떼어 버리셨습니다. 이런 훈련이 계속되었을 때 저는 목자로서의 소망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렇다고 주님의 은혜를 받은 제가 세상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습니다. 저는 죽은 송장같이 되어 센타를 왔다 갔다 하였습니다. 이런 저를 보시고 어느날 목자님은 마가복음 10:45절을 읽어주셨습니다. “인자의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 그리고 제가 섬기는 종 예수님을 배우도록 간절히 기도하여 주셨습니다. 이 말씀이 저의 영혼에 한줄기 빛과같이 다가왔고 저는 섬기는 종 예수님을 배우고자 하는 영적인 방향을 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훈련을 마음으로 받아드렸을 때 심령에 섬기는 종 예수님을 배우는 자유와 큰 기쁨이 임하였습니다. 그때 76년 U.B.F 역사의 시련의 때가 다가왔는데 주님은 저를 깨어서 각센타를 심방하며 주님의 역사를 지키는데 써주셨습니다. 그리고 6월에 이윤성 목자와 목자가정을 세워주시고 이윤성 목자가 섬기던 종로3부 씨니어 회를 섬기게 하셨습니다. 그때 목자님은 제가 성숙한 학사목자님들의 사랑과 섬김속에서 안주하지 말고 학생들을 전념하여 섬기라는 방향을 주셨습니다. 이에 신시내티의 전사무엘 선교사님과 함께 77년 4월에 고대켐퍼스에 FISHING을 나갔다가 폐결핵으로 휴학중이었던 박경호(헨리박 선교사) 형제를 만나 요한복음 1대1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대일을 시작한지 4개월만에 여름수양회를 통해 은혜를 받은 박경호 형제와 1,2학년 어린양 세명과 함께 연세대 개척을 나가라고 하셨습니다. 이윤성 목자는 씨니어 학사회와 함께 종로학사회에 남겨두고 학생만 데리고 개척을 나가라 하셨습니다. 참으로 야속한 방향이었습니다.그때 저는 동역자를 의지할 수도 없고, 학사목자님들을 의지할 수도 없고, 일대일을 시작한지 4개월되는 박경호 형제를 의지할 수도 없어 마음속으로는 망할 것같았고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절박해진 저는 새벽만 되면 절로 눈이 떠졌습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새벽5시마다 연세대 언더우드 동상앞으로 뛰어가 부르짖어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눈오는 겨울에도 날마다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하도 새벽마다 부르짖어 기도하니까 새벽 순찰을 돌던 수위가 후레쉬를 들고 가까이 다가와 비춰보고는 그냥 돌아가곤하였습니다. 새벽에는 부르짖어 기도하고 낮에는 박경호 형제가 인도하여온 학생들과 함께 날마다 창세기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저의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시고 또 창세기 공부를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6개월만에 박경호 형제를 따라온 고대생들과 그들이 피싱한 연대생들을 포함하여 14명의 창세기 강사를 세워서 창세기 성경학교를 2차에 걸쳐서 할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때 연희센타에 학생역사가 왕성히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시카고에서 들으신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종로 씨니어 학사회 20여명과 김사라 동역자를 연대개척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라고 연희센타로 보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후 연희센타 개척역사가 왕성하게 일어나도록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지난 35년간 하나님께서는 연대 이대가운데 개척조상들 대부분을 포함하여 150여명의 선교사를 파송케 축복하여 주시고 국내 3개지부와 연희센타내 네개부를 개척케하셨습니다.

저는 자기 이름이 인정받고 높임받기를 간절히 원하여 시기하고 갈등하며 죽을것같은 괴로움과 고통을 당하던 삶을 살던 천박한 죄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저를 주님의 종 이사무엘 선교사님을 통해서 완전히 자아가 깨어지고 죽고 오직 섬기는 종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를 위해서 낮아져 섬기는 종으로 훈련하여 빚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저를 지금까지 국내 켐퍼스와 세계켐퍼스 개척 역사 가운데 섬기는 종으로 귀히 써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립니다.

저는 하나님의 주권을 따라 한국 U.B.F 복음 역사를 섬기는 종으로 부르심을 입었을 때 심히 두렵고 떨렸습니다. 한국 UBF 스탭목자님들과 한국 역사를 어떻게 잘 섬길수 있을까 무거운 마음으로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며 하나님께 말씀주시기를 기도할 때 주님께서 주기도문 누가복음 11장 2절 말씀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말씀과 마가복음 10:45절 “인자의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앞에서 제가 그동안 역사 성장에만 관심을 가지고 저 자신이 예수님을 닮은 제자로 성장하고자하는 소원과 기도제목이 없었음을 깨닫고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닮은 제자로 성장하지 못하였을때 연희의 역사도 여러해동안 정체에 머물러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를 통해 제가 섬기는 종 예수님을 계속해서 겸손히 배움으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예수님의 참 제자로 성장해야함을 깨닫고 간절히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저와 모든 STAFF 목자님들과 평신도 목자님들과 모든 U.B.F 동역자들이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를 첫째 기도제목으로 삼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예수님의 참제자로 성숙해가는 종들이 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를 첫째 기도제목으로 삼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예수님의 참제자로 성숙해갈 때 하나님께서 주의 나라가 이땅과 전세계에 편만히 임하게하여 주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예수님의 참제자로 성숙해가게하시고 이를 통해 예수님을 닮은 선교사들이 미전도국 140개국을 비롯하여 전세계 233개국에 파송되어 전세계에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한국 U.B.F가 전세계에 흩어져서 아버지의 이름과 나라를 위해 헌신하시는 선교사님들을 계속해서 지원하며, 2041년까지 미전도국 140개국을 비롯하여 전세계 233개국에 10만명 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제사장 나라로서 귀히 쓰임받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arch/ubf_haniim.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15/03/12 04:39 저자 127.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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